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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유퀴즈 심영식 문수일 유관순 8호 감방 대한이 살았다 광복절

by Zebra1 2020.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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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식 애국지사 세례명 심명철 문수일 심영식 지사의 아들과 심영식 애 욱 지사는 어떤 사람?

유년시절 시각장애를 갖게 된 심영식 지사 맹학교 졸업 후 개성 호수돈 여학교에서 공부

눈이 안보이시는데도 3.1운동을 하시 다가서 대문 형무소에 수감

서대문 형무소 8호 감방 약 세 평 남 짓네 저도 가봤는데 조그 매 요그 조그만 곳에... 사실 한 명이 있기에도 힘든 곳인데

많게는 스무 명까지도 수감됐었던 서대문 형무소의 감방 발 디딜 틈도 부족했던 이곳에서 누울 공간이 부족 해교대로 잠을 자야 했다. 8호 감방에 수감된 분들을 알아보니까 여덟 분이 계셨다고 해요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 감방이 방에는 전국의 3.1 운동을 주도한 여성 지도자들이 수감되었다. 유관순, 권애라, 임명애, 어윤희 신관 빈, 김향화, 심영식, 노순경

심영식 어윤희 신관 빈 권애라 개성에서 함께 3.1 운동을 주도한 4인 치마 속에 태극기를 감추고 다니며 전파

유관순 천안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 말이 많이 없고 차분했던 유관순 열사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인해 18세에 옥중에서 순국했다.

임명애 파주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 임신한 상태로 수감

김향화 수원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 김향화 지사는 수원에서 기생 30명을 이끌고 투쟁을 벌였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면? 남수일 : 옥중 생활에 대해서이야기를 하셨었는데 가끔 불려 나가셨대간 수한테 뺨을 많이 맞았대요... 돌아가실 때까지 귀에서 한쪽 귀에서 고름이 나오고 그랬다고

평생 몸에 남은 고문의 상처 어머니가 자꾸 대들고 그러니까 맹인 주제에 무슨 독립운동이냐 절대 뜻을 굽히지 않은 심영식 지사

내가 눈이 멀었을지언정 나라의 독립을 원하는 마음은 잃지 않았소-독립운동가 심영식

김옥보다 더 깊고 어두웠을 감옥이건 어머니가 쓰시던 안경인 데이게 구십 년, 백 년은 됐을 거라고 봐요 어머니의 분신 같은 안경

어머니가 살아계실 적에 앞을 보시는 분이었으면 해방 후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지 못한 심영식 지사

남수일 돌아가실 때까지 독립유공자가 못 되셨어요 생전에 하지 못한 독립유공자 가겨은사후에 더 어려워졌다. 그 책이 있어요 그 책에 그 사람이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독립유공자 자격을 찾아드리기 위해 나서 준 의인 심영식 지사의 독립운동 활동을 책으로 정리

지금까지 안 됐을지도 몰라

1983년 세상을 떠난 고 심영식 지사는 사후 7년인 1990년이 되어서야

공훈이 인정되어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 됐다. 어머니의 공훈을 잘 정리해준 책

옥중에서 부르던 노래를 광복 후에도 종종 부르던 어머니 8호 감방에서 불리 던독 립의 영원이 담긴 노래

감방의 상황과 그 안에서 느낀 감정이 담긴 가사 아들은 어머니의 목소리르 글로 남겼고

오랜 시간이 흘러 글에는 다시 선율이 입혀졌다. 대한이 살았다.

끔찍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8호 감방 때문에 8호 감방은 옥중 투쟁본부라고도 불렸다. 1920년 3월 1일 3.1 운동으로부터 1년 뒤

8호 감방에서 시작된 옥중 만세 운동 은서 대문 형무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대한이 살았다. 100년 전 그날, 서대문 형무소에는 대한 독립 만세로 가득했다.

남수일 : 어머니가 독립유공자가 됐을 때 가제일 기뻤고 그다음에 대한이 살았다 가다 시 살게 돼서 기뻤고 독립운동하시고 나서 결혼 후에는 삯바느질로 살림살이를 챙겨 온 심영식 지사 새 교복을 사기 어려웠던 집안 형편

고 심영식 여사의 반짇고리 함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만큼 가정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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