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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천종호 소년재판 판사 계기 친구편지 소년법 처벌 10호 처분

by Zebra1 2020.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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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 법원이 소송 절차에 따라 송사를 심리하고 판결하는 곳

여긴 법정 '체험실' 체험실에서라도 절대 안지 말아야 될 그곳 피고인석

천종호법린이 조셉도 알 장터로 유명한 이 분! 우리나라 사범 사상 최장기간 8년간 소년재판을 맡은 호통판사, 천종호 판사 천종호, 그는 누구인가?

우리나라 사법 사상 유일하게 8년간 소년재판을 맡아 12,000여 명의 소년범들을 재판

어린이날 유공자 포상에서 옥조근정훈장 수상

옥조근정훈장 :공무원으로서 송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

천 판사님 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 장면 선처를 바라는 가해 학생들에게 호통을 치는 모습

천종호 당시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헤어드라이어로 온몸을 묶어서 바다에 빠뜨린다고 위협하고 돈을 상납하지 않는 다고 때리고 112회, 1400만 원 가까이 갈취하고 한 아이를 이렇게 집중적으로 괴롭히면 그 아이는 자살 안 한 것이 참 다행이라 할 정도예요

선처를 바라는 가해 학생들과 가족들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

천종호 당시 차원 지방법원 부장판사 :너희들 지금 그건데, 일진인데 보니까?

가해가 가족 :일진 이런 쪽하고는전혀 관계가 없는 거로 보고 있거든요.

천종호 당시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학교 내에서 집단으로 무리를 이루어서 힘을 과시하면 그게 바로 일진입니다.

가해자 가족 :제가 판단할 때는 절대 그런 쪽으로 빠질 애가 아니거든요.

빠질 애가 아니고요. 그 아이들이 그렇게 논다니까요!

아이의 죄를 두둔하는 부모

이 아이들은 못 만나게 해야 해요! 그게 바로 일진이에요!! 그걸 모르고 계시는데 아이 교육 어떻게 할 거예요?!!

오죽했으면 호통을 치겠습니까 체통도 없이 아이 한 명에 할애되는 시간이 평균 3분밖에 안 돼요!

맡은 사건이 많아짧은 시간에 내려야 했던 판결 아이들이 3분 만에 재판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법정에 대해 경각심을 못 가질 거 같아서 평균 1시간 일본에 비해 너무 짧은 우리나라의 소년재판

다시는 법정에 서지 말기를 바라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형법보다는 처벌이 가벼운 소년법

가벼운 처벌을 하는데 경각 심마 저 못 가지고 간다면 다시 법정에 설 가능성이 높거든요. 3년 동안 제 법정에 다섯 번 선 아이도 있거든요

사회가 얼마나 관용을 베풀고 있는지를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호통을 치고 다시 오면 엄한 처벌을 하겠다고 경고를 내리는 거죠.

법정이 울음바다가 되기도 한다던데?

네! 제 법정은 일부러 울리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제 법정에 선 아이들은

결손 가정 아이들입니다.

천종호 :슈퍼에서 담배를 훔친 경우라면 보통은 피해 변상하고 마무리되지 않습니까 그러지 못한 아이가 법정에 서니까 대부분이 결손 저소득층 가정의아이들이에요일 자리르 찾아서 아이 곁을 떠난 부모들은 아이들의 재판 소식을 듣고 선처를 위해 법정에 서게 된다.

몇 년 만에 아이를 보는 어머니 아버지도 계시고요. 부모님이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게 해 화해시키고 재비행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고 하는 거죠.

가해 학생 :어머니가 술 먹고 들어오시면 너 하고 나하고 그냥 죽자고 화내시면서 때리고 그랬습니다.

천종호 당시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어머니, 왜 그렇게 아이를 때렸어요?

가해 학생 가족 :제 잘못입니다. 상처 받은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어머니

소년재판을 처음 맡게 된 계기 천종호 :평범한 판사로서 생활하다가 변호사로 개업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부산 고등법원 3년 마치고 부산지방법원으로 가야 되는데 창원지방법원으로 인사발령이 됐고요 우연히 담당하게 된 소년재판

소년재판은 일반 사건과 달 리판 결문 쓰는 노력을 조금 덜 해도 되거든요 그래서 좀 쉽게 해 보자 처음에는 별 큰 뜻 없이

업무 부담을 덜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던 소년재판 사실 제가 부산에서 아주 가난한 동 네그야말로 달동네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친구 한 명이 우연히 잘못된 길을 들어서서 부산의 유명한 조직에 가담했다가 지금 무기징역 수로 목포교도소에서 25번째 복역하고 있고

어려웠던 가정환경 하지만 이제는 극명히 달라진 각자의 상황 소년재판을 담당하고 나서 보니까 그런 친구들 동생들 형들이 생각나서 좀 더 열심히 해야 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종호 :그 친구와 몇 개월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긴 하는데 안타까운 게 그 친구는 편지를 존댓말로 보냅니다.

그 편지를 저한테 주면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편지 좀 보여줘라 나처럼 이런 인생을 살지 않도록 반면교사 삼아줬으면 좋겠다고

소년법 처벌에 관하여

Q.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천종호 :소년법은 형법보다는 가볍게 처벌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저는 그 정신을 살리되 어느 판사님보다 엄하게 하거든요.

소년 보호처분 중에 가장 무거운 처분이 10호 처분입니다.

10호 처분 :장기로 소년원에 송치하는 처분으로 보호기간은 최장 2년

10호 처분을 많이 내려 생긴 웃픈 별명, 천 10호 벌 할 때는 정확하게 하지만 처벌한 이후에 재비행을 막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더 노력했으면 보호 소년 축구단 운영 사법형 그룹홈 설립 등

아이들의 재비행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서 활동 중인 천종호 판사 피해자 보도 법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의 피해자와 아직도 교류를 하고 있거든요.

법적인 권한은 없지만 우연히 그 아이하고 서로 연락이 돼 가지고 장학금을 모아서 아이한테 주고 놓치지 않으려는 피해 학생에 대한 지원과 보호

법이 없다 하더라도 피해자들을 우리 사회 전부가 안아주시면 그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방황의 기로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한마디? 천종호 :지금 뭔가 유혹 거리가 있다면"'미래에 내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를 돌이켜보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 가정환경은 어떠셨는지? 형제가 7형 제고 부모님까지 아홉 가족인데요

중학교 시절에는 단칸방에서 아홉 식구가 살았거든요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비가 없어서 수학여행도 못 갈 정도였으니까... 지키기 힘든 환경이었을 텐데 어떻게 견뎌내셨을까요? 가난 속에서 그냥 좌절하기는 그렇고 조금씩 공부하니까 성적은 오르고 미래의 꿈이 하나씩 쌓여간다는 생각으로 계속 해왔죠.

사법고시는 몇 번 만에 합격하셨어요?

일곱 번 떨어지고 여덟 번째에!

예비판사제 :사법연수원 수료 후 2년간 현장에서 법관 수업을 받은 후판사로 임명되던 제도 1998년 시행, 2007년 폐지되었다.

내가 가장 가치를 두는 헌법 조항이 있다면? 천종호 :제10조에 보면'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천종호 :법관은 결국 인간을 어떻게 정당하게 대우할 것인가 정의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정당한 대우를 하는 최선의 길이 그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주관식 문제 :조선 시대에 평민들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 것으로 조선 시대 왕을 상징하는 최고의 보석인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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